

카메론이 던져 주고 싶은 꿈과 희망을 잠시 접고 냉정하게 가정을 해보자.
나비족은 위대한 나무를 빼앗겼을 것이다. 인간이 나비족을 몰살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 군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끝없이 무한에 가까운 공포와 좌절을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반복된 패배는 나비족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렸을 것이다. 인간에게 협조하는 나비족들도 나왔을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갈수록 냉정한 판단을 잃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성적 대응을 요구하는 나비족들은 개량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로 몰려서 쫓겨날 것이다.
인간들 가운데 침략을 반대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아마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제거되지 않았을까. 운 좋은 몇몇이 지구로 돌아가 'Save Pandora'를 외치며 채굴 반대운동을 펼치겠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이다. 몇만 광년이나 떨어진 행성의 일이 그들에게 과연 뭐란 말인가.
또 단 한차례 나비족이 승리를 거뒀다 치자. 인간들은 더욱 무겁고 큰 규모의 중장비를 보내 더욱 호된 맛을 나비족에게 보여줄 것이다. 설사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채굴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높다 하더라도 인간들은 그 짓을 멈추지 않는다. 총비용과 총수익을 따지는 것은, 진짜 이익을 얻는 이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판도라를 정복하고 회사의 주가를 높여놓겠지.
아주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얼치기 영웅이 갑자기 나타나 뒤집을 수 있는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니다.
다시 미안하지만,
멀쩡하게 살던 곳에서 쫓겨난 이들이 망루에 올라 불도저에 돌과 불을 던져도 "뭘 얼마나 더 처먹으려고 저 지랄이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를테면, 점령군 대장인 파커가 항전결의를 하는 나비족들에게 "인당 100만원씩 주면 떨어지려나? 더럽게 욕심많은 족속이군"이라고 불평하는 게 현실이다.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을 보면서 국내의 많은 이들은 '용산'을 떠올렸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와 인접한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어떤 이들은 인도 오릿사주에서 제철소 건설에 반대하며 떠나지 않고 있는 몇 백명의 원주민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비참한 현실은 여기에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은 한 두 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일들은 훨씬 더 많으리라는 짐작을, 그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이미 수많은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들이, 수많은 용산과 오릿사주 원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마치 선험적인 기억처럼 알고 있다는 사실이리라. <아바타>를 본 뒤 '토루크 막토'가 이끈 전쟁의 승리가 거짓말이고, 끝도 없는 패배와 피정복의 경험이 진실이라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바타>를 본 뒤, 나는 그 전까진 그리 미워하지 않았던 제임스 카메론의 거짓말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토루크 막토의 신화를 믿고 우린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나비족들의 승리를 믿고 우린 원주민들에게 그저 '힘내라'고 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잠시만이라도 꿈과 희망을 던져 준 카메론에게 감사해야 할까.
현실에선 어차피 이길 수 없더라도, 토루크 막토의 피끓는 의기를, 굽힘 없던 나비족의 용기를 마음 속에라도 묻고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꿈과 희망의 영역에서나마 잠시라도 승리를 중얼거릴 수 있어서 다행인 걸까.
**최근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아마존의 눈물>은 여러모로 영화 <아바타>를 연상시킨다. 아마존이 언젠가 개발이 된다면, <아바타>의 실제 상황이 정말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진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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