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론 아저씨, 그렇게 희망적이어도 되나요? 세상 사는 이야기들

제임스 카메론은 대책없이 희망적이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영화 속의 인간들보다 나비족에 더 감정이입을 했을 게다. 아, 당신들은 정말 인간보다 나비족에 가까운가요?)

그가 만든 영화들은 날카로운 갈등으로 보는 이를 두어시간 내내 쥐어 짜다가도 마지막에 모든 걸 편안하게 탈바꿈시킨다.
<타이타닉>이 비극이었나? 주인공 잭은 죽었지만, 로즈와 잭의 사랑은 완성형에 가까왔다. 구순 노인이 될 때까지 잭을 마음 속에 품고 살았던 로즈가 남몰래 블루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던져버릴 때 그들의 사랑은 마지막으로 완결됐다. 타이타닉 재앙의 희생자였던 수천의 사람들의 인생은 그들의 러브 스토리 속에 아름답게 녹아들었을 뿐이다. 또 상류사회 처녀인 로즈와 노동자 계급인 잭의 사랑 사이에 낄만한 계급 갈등의 먹구름도 대규모 해양참사 앞에선 물거품처럼 사라졌을 뿐이다.
에스에프(SF)에서 낯선 공포를 들여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일리언>을 이어받은 <에일리언2>(원제는 Aliens)에서도 대책없이 희망적이고 낙천적인 카메론을 발견한다. 전편의 문법에 따르자면 누가 살아남을지 살아남지 못할지 마음을 졸였어야 하건만, 난 영화 시작 20분만에 살생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주인공인 리플리와 그의 '짝'처럼 자리매김한 힉스, 그리고 그들의 딸과 같은 뮤트는, 그 어떤 외계생명체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등장인물의 죽음은 아무리 마음 아파도 참아낼 수 있는 죽음이지만, 그들 셋 중 하나의 죽음은 영화에 비극을 드리울 수 밖에 없는 '가족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가족은 결코 죽어선 안됐다.
<어비스>는 또 어땠나. 심해의 괴생명체는 영화 초중반까지 선악을 가를 수 없는 신비의 존재지만, 결국은 선할 수밖에 없었다. 악인은 죽고 박사 부부는 살아남는다. 거기에 덧붙여 괴생명체는 선한 존재로 인간과 교감하는 선물까지 준다.
뭐, 여기까진 좋다. 그런 영화 문법에 대해 그닥 불편하다는 느낌을 가진 적은 없었으니까. 결국 헐리우드 영화는 보는 이에게 꿈과 환상을 주는 걸 미덕으로 삼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카메론 감독의 영화문법을 떠올리면서 보기 시작한 <아바타>는 좀 달랐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제이크 설리가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고, 이주 문제에 대해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영화가 어떻게 끝날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몇 명의 인간과 많은 나비족들은 죽겠지만, 원주민은 이기고 남녀 주인공은 종을 뛰어넘어 사랑을 이루게 될 것이다.
영화의 결말을 가져온 중요한 사실이 한 가지 있고, 영화를 다 본 관람객들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 있는 부연적 사실이 또 한 가지 있다.
먼저, 앞의 사실은 '원주민이 침략전쟁을 벌인 인간과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이다. 영화가 안고 있는 모든 갈등의 요소는 이 한 가지 사실로 모두 해소된다. '이기지 못했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의문 따윈 필요하지 않다. 영화는 그런 가능성 따윈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토루크 막토로 선택받은 제이크 설리가 어떻게 질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판도라 행성에 더 이상 침략군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영화 말미에 붙은 나레이션은 이번 전쟁의 승리로 인간이 더 이상 판도라 행성에 침략군으로 발붙이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준다. '대규모의 인간 군대가 몰려오면 어떻게 해?'라는 의문 또한 필요가 없어진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들의 마음에 '꿈과 환상'을 남겨주기 위해 이 두가지 사실은 영화 속에 필연적으로 필요한 셈이다.

영화가 불편했던 이유는, 영화에서 전제한 그 사실들이 거짓이란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침략군에 맞서 원주민이 승리한 역사 따윈 우주의 역사까지 확대하지 않고 인류의 역사만 보더라도 '없다' 싶을 정도로 드물다. 칼과 활로 무장한 수천의 나비 용사들이 쏟아지는 전투기와 미사일을 이겨내는 것은 영화 속에서조차 '토루크 막토'의 신화에 기대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원주민의 투쟁심을 꺾으려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 또 단 한 차례의 실패로 인간과 자본의 탐욕이 그 예봉을 꺾는다는 설정은 더욱 더 거짓에 가깝다.


(이들을 상대로 나비족 수천명이 승리를 거둔다는 것이 정말 적절한 설정일까? 승리를 거두길 바라는 마음이야 똑같지만...)

카메론이 던져 주고 싶은 꿈과 희망을 잠시 접고 냉정하게 가정을 해보자.
나비족은 위대한 나무를 빼앗겼을 것이다. 인간이 나비족을 몰살할 수는 없지만, 영화 속 군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끝없이 무한에 가까운 공포와 좌절을 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반복된 패배는 나비족을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렸을 것이다. 인간에게 협조하는 나비족들도 나왔을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갈수록 냉정한 판단을 잃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이성적 대응을 요구하는 나비족들은 개량주의자 또는 이상주의자로 몰려서 쫓겨날 것이다.
인간들 가운데 침략을 반대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아마 쥐도새도 모르게 끌려가 제거되지 않았을까. 운 좋은 몇몇이 지구로 돌아가 'Save Pandora'를 외치며 채굴 반대운동을 펼치겠지만 대부분의 대중들은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이다. 몇만 광년이나 떨어진 행성의 일이 그들에게 과연 뭐란 말인가.
또 단 한차례 나비족이 승리를 거뒀다 치자. 인간들은 더욱 무겁고 큰 규모의 중장비를 보내 더욱 호된 맛을 나비족에게 보여줄 것이다. 설사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 채굴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높다 하더라도 인간들은 그 짓을 멈추지 않는다. 총비용과 총수익을 따지는 것은, 진짜 이익을 얻는 이들이 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비용이 들더라도 판도라를 정복하고 회사의 주가를 높여놓겠지.

아주 미안하지만, 이게 현실이라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얼치기 영웅이 갑자기 나타나 뒤집을 수 있는 현실은, 진짜 현실이 아니다.
다시 미안하지만,
멀쩡하게 살던 곳에서 쫓겨난 이들이 망루에 올라 불도저에 돌과 불을 던져도 "뭘 얼마나 더 처먹으려고 저 지랄이냐"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를테면, 점령군 대장인 파커가 항전결의를 하는 나비족들에게 "인당 100만원씩 주면 떨어지려나? 더럽게 욕심많은 족속이군"이라고 불평하는 게 현실이다.

(국제민주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포스코 인도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원주민 강제이주 등 인권침해가 벌어졌다며 규탄하고 있는 모습 / 국제민주연대에서 퍼옴)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을 보면서 국내의 많은 이들은 '용산'을 떠올렸으리라 믿는다. 우리의 지식은 우리와 인접한 경험으로부터 오는 것이니까. 어떤 이들은 인도 오릿사주에서 제철소 건설에 반대하며 떠나지 않고 있는 몇 백명의 원주민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비참한 현실은 여기에 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상은 한 두 개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와 비슷한 일들은 훨씬 더 많으리라는 짐작을, 그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에 이미 수많은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들이, 수많은 용산과 오릿사주 원주민들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마치 선험적인 기억처럼 알고 있다는 사실이리라. <아바타>를 본 뒤 '토루크 막토'가 이끈 전쟁의 승리가 거짓말이고, 끝도 없는 패배와 피정복의 경험이 진실이라는 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아바타>를 본 뒤, 나는 그 전까진 그리 미워하지 않았던 제임스 카메론의 거짓말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토루크 막토의 신화를 믿고 우린 아무런 걱정 없이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나비족들의 승리를 믿고 우린 원주민들에게 그저 '힘내라'고 빌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잠시만이라도 꿈과 희망을 던져 준 카메론에게 감사해야 할까.
현실에선 어차피 이길 수 없더라도, 토루크 막토의 피끓는 의기를, 굽힘 없던 나비족의 용기를 마음 속에라도 묻고 살아가면 되는 것일까. 꿈과 희망의 영역에서나마 잠시라도 승리를 중얼거릴 수 있어서 다행인 걸까.

**최근 MBC에서 방영하고 있는 <아마존의 눈물>은 여러모로 영화 <아바타>를 연상시킨다. 아마존이 언젠가 개발이 된다면, <아바타>의 실제 상황이 정말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진 않을런지.

2007년, 종로에서 세상 사는 이야기들

  3월 10일, 그러니까 금요일 밤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이리저리 음악과 관련된 동영상을 찾던 나는, 정태춘씨가 어느 공연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부르는 동영상을 발견했다. (바로 밑의 포스트에 붙여놨었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랴'라고 외치는 부분의 감성을 좋아하는 나는, 아무래도 종로바닥을 예전부터 마음속에 찬찬히 새겨놨던 것 같다. 종로는 사람들의 거리, 그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거리다. 가는 실처럼 뻗은 골목골목은 서울이라는 애달픈 공간의 실핏줄이다. 좁은 골목에 가판을 차려놓고 하얀 오뎅국물의 김을 공장처럼 뿜게 만드는 포장마차 옆으로 걸어 지나갈 때, 어깨를 기울여 마주 걸어오는 사람들과 스쳐지나갈 때, 신호등의 파란불을 기다리며 모르는 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때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살아 있음은 축하의 나팔소리와 환호성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 속에서 티끌 같은 나의 존재, 깃털처럼 훅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그 존재의 가벼움을 데리고 다니는 복잡미묘한 감정이다. 그 감정은 슬프고 어둡지만 좌절스럽지는 않다. 이 거리에서, 종로라는 서울의 뿌리에서 언제든지 사람들은 모여들 수도,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이 감정은 양면적이다. 난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그런 감정을 가지고 듣는다.
 3월 11일, 한국과 미국 정부가 FTA 타결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을 때 사람들은 이 종로로 모이기 위해서 줄달음치고 있었다. '허가받지 못한' FTA 반대 시위가 이곳에서 열렸다. 사람들은 이곳에 모이기 위해 경찰들과 두더지게임을 하고 있었다. 신촌로타리에서 한 차례 모였던 사람들은 시내로 진출하기 위해 지하철로 숨어들었고 경찰은 온 시내의 지하철 역 출구를 틀어막았다. 머리라도 내밀면 망치에 맞는다. 이미 '원천봉쇄' 방침을 밝혔고 시위 자체를 '허가하지 않았으므로' 경찰들의 조치는 너무도 당연했다. 그와 동시에 시위대의 행동도 너무나 당연했다. 최종 집결지를 쉬쉬하며 사람들은 지하철로 이리저리 옮겨다녔다. 머리를 내밀 구석을 찾기 위해서. 위험하다 싶은 경복궁역에서는 아예 전철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 미국대사관 바로 옆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덕분에 경복궁역에 내리려 했던 '시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시민'들의 이동권이 침해당한 건 경찰 때문일까, 시위대 때문일까. 독립문 역에서 나오고자 했던 시위대들은 경찰과 밀고 당기기를 해야 했다. 경찰은 시위대의 원천봉쇄를 위해 출입구를 막아버렸다. 또 덕분에 독립문역에서 나가고자 했던 '시민'들은 이동권을 침해당했다. 그건 또 누구의 책임일까.
 
 결국 사람들은 종로의 끝에서 모였다. 광화문 네거리를 눈 앞에 두고 해방구로 뛰어가듯 사람들은 지하에서 뛰쳐나왔다. 하나둘 깃발이 보이고 확성기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벌써 3천명 가까이 되었다. 물론 3천명 앞에는 경찰버스와 무장한 전의경들이 광화문으로 나가는 길목을 막고 있었다. 시위대들은 확성기를 이용해 선전전을 펼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구경하기 바빴다. 기자들은 열심히 카메라와 수첩을 이용하여 취재하기 바빴다. 여러차례 경찰쪽에서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들은 지금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습니다. 빨리 해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도로를 무단으로 점거한 시위대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윽고 두 무리는 만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경들은 방패를 들고 곤봉으로 땅을 긁으며 힘찬 기합소리를 내뿜었다. 시위대는 서로 팔짱을 끼고 앞을 쏘아보았다. 취재기자들은 더욱 바쁘게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누군가 누구를 때리고 누군가 크게 다치지 않을까.... 누군가 "죽지" 않을까. 경찰들이 시위대 쪽으로 뛰어가자 일대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애시당초 팔짱이나 끼고 있던 시위대들이 별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을리 만무했다. 그저 몸싸움으로 저항하다가 끌려가고, 아니면 뒤로 물러설 수밖에. 곳곳에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위대가 뒤로 조금 물러난 상황에서 다시 대치.
 
 물대포가 발사되었다. 경고용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집회에 참가해도 항상 뒤에서 안전 보장된 시위대로 활동했기에 물대포를 맞아본 적도 없었다. 취재한답시고 간 집회현장에서 물대포를 맞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온 몸이 흠뻑 젖었지만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이런, 제기랄...." 고작해야 혼자 욕이나 삼키는 수준. 경찰은 다시 진압에 나섰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위대는 쫓겨가기 시작했다. 종로의 대로를 점거하고 양쪽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밀고 당기고 끌고 끌려가고 때리고 맞고 소리를 지르고 기합을 내고. 어느 여학생은 전경들에게 끌려갔다가 다른 시위대들이 벌떼처럼 달려 들어 비로소 풀려났다. 불운했던 한 남자는 까만 전경들의 벽 사이로 끌려서 사라졌다. 범국본 진행차량의 확성기는 전경들이 달려들면서 삐이 하고 쇳소리를 냈다. 차 안에서는 한 여자가 여전히 큰 소리로 선전전을 벌이고 있었다. 깃발들은 힘없이 나부끼고 흠뻑 젖은 시위대들은 자꾸 뒷걸음쳤다.
 
 결국 시위대는 보신각 네거리까지 뒷걸음쳤다. 어느틈에 경찰들은 이미 지나온 길의 교통 통제를 풀었다. 날이 어두워 헤드라이트를 번쩍이는 버스와 승용차들이 아수라장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아마 시위대들을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욕하는 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네거리는 시위대와 경찰, 기자, 일반 차량이 뒤섞여 다시 아수라장으로 바뀌어갔다. 이미 시위대를 쫓아가는 와중에 경찰들에게 거칠게 밀쳐진 기자들은 충돌상황을 보기 위해 시위대 쪽으로 접근했다. 이때 진압의 방향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경찰에, 뒤로는 차들에 막힌 시위대들이 갈 곳 몰라 하는 상황에서 전경들이 중앙선으로 진입했다. 인도방향으로 시위대를 밀어올리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쿵쿵 소리를 내며 방패는 불도저가 되어 사람들을 밀어올렸다. 마치 짐짝 밀어대는 것 같았다. 곳곳에서 비명이 들렸다.
 
 시위대 틈에 끼었다가 방패로 밀쳐지며 옆구리 등을 몇 대 맞은 나는 경찰에게 항의했다. "왜 때려?" 돌아오는 건 다시 방패였다. "난 취재기자라고!" 난 소리를 질렀지만, 그 말에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느꼈다. 어쨌든 시위대는 흩어지고 흩어져서 경찰의 진압에 따라 인도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 역시 인도로 올라가기 위해 경찰을 등지고 인도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뒤통수에 뭔가 퍽하고 부딪혔고 어깨와 등짝에도 뭔가가 사정없이 부딪혔다. 방패에 떠밀리면서 간신히 뒤돌아 보니 전경들이 방패로 나를 비롯한 기자들과 시위대들을 밀어대고 있었고 그 위로 경찰봉이 난무하고 있었다. 내 바로 옆에 있던 사진기자가 쓰러졌다. 머리에 PRESS라고 적힌 헬멧을 쓴 그 사진기자는 쓰러진 채 일어나질 못했고 전경들은 그를 밟고 지나가려는 듯 방패와 경찰봉을 휘두르며 접근해왔다. 등을 돌리며 경찰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만 해! 그만 해!" 내가 소리를 지르자 다른 기자들이 쓰러진 기자에게 달려와서 얼른 일으켜 세웠다. 정신없이 휩쓸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인도 위에 올라와 있었다. 얼굴이 벌개진 다른 기자들과 함께 보신각 네거리 앞을 둘러싼 경찰들에게 항의했다. 몇몇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맨 앞에 있던 전경이 손을 들어 카메라를 막았다. 흥분한 나도 그 전경의 손을 밀쳐냈다. "야! 카메라를 치워? 왜 카메라를 치워?"
 
 보신각 네거리 앞 보도블럭은 전경들로 둘러싸인 섬이었고 그 섬에는 시위대들과 기자들만 살았남았다. 이미 차들은 종로 거리를 쌩쌩 달리기 시작했다. 교통의 흐름이 비로소 정상화된 것이다. 잠시 후 경찰들이 인도로 올라왔다. 올라가겠다는 말도, 비켜달라는 말도 없었다. 아까와 같이 방패와 몽둥이가 난무했고 사람들은 더욱 뒷편으로 뒷걸음쳤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이제 섬에는 시위대도 있고 기자들도 있고 경찰들도 있었다. 여전히 기자들은 전경들에게 항의를 하고 있었다. "소속이 어디야?", "취재하는 기자까지 때리다니 그냥 안 넘어갈꺼야!" 흥분한 나도 전경들에게 항의를 했지만 아무런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경찰 중 그 누구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기자들은 한군데 모여 서로의 피해상황을 종합했다. 경찰봉으로 뒤통수를 맞아 혹이 나고 입술이 찢어진 나는 튼실한 아이템이었다. 타사 기자들로부터 날 취재하겠노라고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누가 어떻게 맞았는지 뉴스가 종합되고 시위대쪽의 피해상황도 종합되었다. 범국본에서는 19명이 연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쫓기는 중에 귀가 찢어진 사람도 있었다. 시위대 중 몇 명이 늘어선 전경들에게 항의를 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 와중에 한국과 미국의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협상은 잰 걸음으로 우리 곁에서 떠나고 있었다. 농업부문 등 우리 정부가 지켜내고 말 것이라고 장담했던 분야에서도 미국의 공격은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태춘이 노래한 1992년의 종로나, 2007년의 종로나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는 얘기다. 뭐, 시위와 진압의 문화가 그때와 달라졌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시위대와 전경들의 밀고 당기기를 보는 건물들도 꽤 달라졌을 것이다. 화염병도 죽창도 없었고 최루탄도 백골단도 없었다. 92년에 종로거리에 신세대랍시고 걸어다니던 사람들은 지금 보자면 촌스럽기 짝이 없을 것이다. 멋지게 국세청 건물도 들어섰고 보신각 앞에는 조그만 광장도 평화롭게 들어섰다. 그래도 시위대와 전경이 얽혀 밀고 당기고 기자들이 그걸 보겠다고 뛰어다니는 건 별반 차이가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지겨울 정도로 일상적인 것이다. 불법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은 수배에 걸려 도망다니고 사람들은 시위현장에서 전경들에게 끌려 닭장차에 실려간다. 항상 시위를 하는 이유는 뚜렷하지만, 경찰이 시위를 금지하고 진압하는 이유는 불분명하다. ‘폭력시위로 변질될 수 있어서’라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하므로’ 정도가 최근에 자주 쓰는 논리인데, 빈약하기 짝이 없는 논리 구성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행정기관의 행정편의의 가치가 충돌할 때 어떻게 행정편의가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 행정편의의 가치가 낯을 가려서 제 식구한테만 인사를 꼬박꼬박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말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차라리 그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물대포에 쓰러지면서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을 다시 일으켜 세웠던 그 때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종로에 깃발군중이 보이고 기자들이 모여도 그 시대의 아우라는 없다. 이미 한 시대는 흐르는 사람들과 함께 흘러가버린 것이다. 변한 것도 없고 나아진 것도 없지만 그 시대는 흘러가버렸다. 언제 비둘기들의 푸드덕 날개짓을 큰 박수소리로 다시 느껴볼 수 있을까. 파란 하늘 아래 남산 타워에서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평선 동네길,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를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은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92년 장마, 종로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이 노래만 들으면 가슴 한 귀퉁이가 뻥 뚫리는 것 같이 휑하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랴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이게 아마도 음악의 힘이고 사람이 하는 예술의 힘일 것이다.
종로에 서서 흘러가는 시대를 바라보는 자의 회한이
너무도 생생하게 듣는 이의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한겨레신문 수습기자 생활 (2) Talk about myself

이제 두달이 된 건가.

수습기간이 언제 끝날지 기약없는 상태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설 연휴였어.

 

스브스(SBS)나 경향신문, 서울신문처럼 수습기간 오래 거친 수습애들하고 함께 있을 때 느꼈던

뭐랄까 짜증스럽고 찌든 듯한 모습들이 아마 우리 몸에도 한껏 배어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뭐 이런 수습교육이 기자가 되는데 정말 최적의 교육일까 하는 의문들도 많고

선배들은 주로 이게 최고의 방법이니까 따라와라 라는 식으로 교육을 시키고 있는 상태인데,

왠지 재미가 없네.

 

모든지 스스로 해라, 알아서 찾아라...이긴 한데,

사실 우리가 스스로 하거나 알아서 할 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얘기 들으면 '누구 놀리나'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

 

나의 자학 시리즈 유명하긴 하지만,

그 자학들도 가만 생각해보면 내 능력부족 이외에 수습이란 위치의 부조리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은 듯 해.

가끔 열받지. "아, 씨바... 왜 내가 내 자신을 이렇게 학대하고 괴롭혀야 하는 건데?" 정도의 느낌이랄까.

앞으로 자학해야 할 날들이 새털같이 많을텐데,

수습기간에 벌써 다 자학해버리면 안되지.

암, 평생 자신을 채찍질하고 괴롭혀야 하는데,

고작 1진 선배가 가져다 주는 부담 정도로 이렇게 자학에너지를 다 쓰면 안되지.

 

요즘 내 느낌은 대충 이런 정도일라나.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1진과의 관계에 그 어떤 끈적함도 없다는 걸 빨리 깨닫고

수습기간도 빨리 끝나서 My Way를 가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고...

그런 My Way를 가기 위해서 수습교육을 이렇게 거지같이 받고 있으면 안되는데,

이따위로 해서는 평생 쓰레기 기자로 살텐데...라는 마음도.

뭐, 도통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구먼.

 

뭐 아무려면 어떠냐...지만,

그래도 1진 선배들이 공부 안하고 기사 막 써대는 건 절대 배우지 말자구.

아무리 주어진 일이 많고 바빠도,

전후 맥락은 알고 써야 하지 않겠어?

먼저 무슨 기사를 쓸지 정해놓고 취재하지는 않는 기자가 되자는 게 내 방침이야.

골라서 먹자구...

 

이제 3일 연휴가 끝났네.

앞으로 이렇게 쉴 때가 언제 또 있을지 모르겠는데...

생각하니까 정말 우울하네.

ㅎㅎㅎ


한겨레신문 수습기자 생활 (1) Talk about myself

2006년 12월 25일.

한겨레신문의 기자가 되기 위한 수습교육에 투입되었어.

25일 새벽 택시를 타고 도착한 노원경찰서의 첫 느낌은,

그냥 암흑.

그때부터 정신없는 경험들...

 

나이 서른 하나 먹도록 도대체 뭘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수습 때에는 누구나 다 어리버리하다고 하지만,

또 내가 그렇게까지 어리버리하지는 않다고도 생각하지만,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정말 예리한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파는 느낌이었어.

 

어느덧 나는 끈기가 없고 체면을 따지며 만사를 귀찮은 것으로 취급하는 꼰대가 되어 있었다...

는 걸 알게 된 느낌이랄까.

 

난 원래 불만분자다.

맘에 안 맞으면 한없이 비뚤게 가기도 하고

불리한 현실은 외면해버리고

불편에 대해선 불평으로 일관하고...

 

내가 1주일간 수습기간을 거치며 가장 많이 힘들었던 건

아마 여태까지 살아왔던 나란 존재의 모습 그 자체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키지 않는 마음 악착같이 다듬고 퇴근하는 형사를 붙잡아 시시콜콜한 사실을 확인하고서

마치 굴욕을 당한 기분으로 혼자 강북경찰서 앞에 있는 해장국 집에 갔었지.

그날 우리 신문 1면이 김기태 선배의 양지마을 체험 마지막 편이더군.

국물 퍼먹으면서 울었어.

은경이라는 아이에게 보내는 선배의 글을 보고서,

그 글 속에 은경이의 본명을 부르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그 애가 가난하다는 것.

그 가난이 우리가 감싸 안고 나눠야 할 것이 아니라

부끄럽고 감춰야만 하는 것이라는 현실 때문이라는 것이 마음을 후벼 파더라.

 

난 그런 기사를 자신있게 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지금의 부끄러운 내 모습이, 어느 순간 뭔가를 대충 해버리고 마는 이 모습이

과연 고쳐질 수 있을까.

 

정말로,

 

육체적인 힘듦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잠이 부족한 건 참을 수 있고

밥을 못 먹는 것도 견딜 수 있지만

'기자'로서 당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못하는 내 모습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닐까 한다.

 

수습교육 기간 중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단지 "꺼리"로 찾아다니는 내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어느새 처음 시작할 때의 그 의지와 각오가 희미해지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길다면 긴 이 수습교육이 끝난 후에,

난 정말 제대로 된 기자가 되어 있을 수 있을까.

속물이 되어, '기자 공해'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해로운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시작 보고 듣고 느끼고


올해 12월 22일을 지나면서 나는 서양 나이로 따져도 서른 줄에 들어서게 되었다.
몇 년의 시간을 '인생의 퇴적물'에서 버리고
새롭게 다른 무엇들을 쌓아야 하는 때가 왔다.

이제 약간의 시간만 더 지나면,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 펼쳐지게 된다.
난 모든 곳을 다니며, 모든 것을 보고, 모든 일들을 증언할 것이다.
이전의 나를 가둬놓았던 모든 벽들을 조금씩 허물면서
나는 다른 나로 진화해갈 것이다.

Chateau D'Arvigny 1999 포도음료

아버지께서 싱가폴에서 우리 부부 주려고 사오신 와인이 있었다.
그전까지는 별 생각 없었기에 그냥 가지고 있었는데,
몽페라를 마신 이후 퍼뜩 생각이 나서 꺼내 보았다.

Chateu D'Arvigny 1999




??????
도무지 무슨 와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싸구려 와인은 아닌 듯 한데, 우리나라 와인샵이나 인터넷 검색을 해도
D'Arvigny란 이름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냥 따서 마시면 그만이긴 하지만,
일단 호기심으로 시작한 와인이니만큼 왠지 이 녀석의 정체를 밝혀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Google 영문검색을 하니 관련되는 이름들이 몇 개 떴다.

Chateau Beaumont

아항, 샤또 보몽의 Second Wine 이구나.
까베르네 소비뇽을 65% 원료로 한 전형적인 보르도 와인... 이라고 했다.

Second Wine 이란 것은,
당연하게도 First Wine의 대체물이다.
테루아르(Terroir : 포도나무가 뿌리를 내린 토양)가 같더라도 포도나무를 새로 심어서 그 뿌리가 테루아르의 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확된 포도로 재배되었다거나,
동일한 테루아르는 아니지만 인접하거나 토양 조건이 같아서 성격이 비슷해져버린 포도로 재배되었다거나,
전혀 다른 테루아르를 배경으로 하지만 제조자의 손길이 많이 들어가 성격이 비슷해져버린 와인.
이게 바로 세컨 와인이다.

세컨 와인의 존재는, 짐작하는대로 값비싸고 인정 받은 와인들과 동일한 성향을 가지기 때문에 그 가치를 지닌다.
세컨 와인이 인기를 끌면 샤또에서도 그 세컨 와인 브랜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에
흔히 잘못 생각할 수 있듯 "짝퉁 와인"인 것은 절대 아니다.

Chateau Beaumont 은 오메독의 이름 있는 샤또 중 하나라고 하며,
2001년 빈티지는 Parker 아저씨로부터 87점의 고득점을 인정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 먹고 싶다

D'arvigny 이 녀석은 내가 두번째로 마셔보는 보르도 와인.
퐁 하고 코르크를 따고 나니
역시나 몽페라에서도 느꼈던 커피향 비스무리한 향기가 올라왔다.
숙성이 한참 진행되고 있었던 중에 너무 일찍 문을 열어버린 듯 해서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색깔은 짙은 가넷. 빛도 통과시키지 않을 듯한 검붉음.
멋도 모르고 첫 모금을 마셨더니 떫은 맛이 혀를 자극했다.
'아하~ 이게 바로 탄닌이란 거지. 이래서 디켄팅이 필요한가보다'
이 떫은 맛이 숙성이 온전히 진행되지 않아서라고 멋대로 단정해버린 나는
주전자 (--) 를 이용해서 어설픈 디켄팅을 했다. 그 후로도 잔에 따라 30분간 공기에 노출.
다시 입에 머금으니,
와아... 온 입에 가득차는 이 중량감.
끈끈할 정도로 입 속에서 휘감기는 이 액체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용을 쓰고 있었다.
'이게 풀바디(Full Body)라고 하는 거구나...'
또 멋대로 단정해버리고 다시 한 번 맛을 느껴보려 했다.

코를 뻥 뚫어버릴 듯한 허브향.
목 뒤로 삼켜도 입과 콧 속에 남아 있는 듯한 잔향.
아련하게 풍겨오는 커피와 담배의 향기.
몽페라를 마실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극적인 감각들로 가득했다.

까베르네 소비뇽이 주요 품종인 보르도 와인을 처음 대해서 그랬는지 이 와인은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7년의 시간도 짧게 느껴지는 생명력, 그리고 강력한 탄닌을 걷고 난 후에 느낄 수 있는 입 속의 감각들.

이 와인 때문에 장기숙성형 와인에 대해 희미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 같다.


Mona Lisa Sangiovese di Toscana, IGT, 2004 포도음료

몽페라 이후 호시탐탐 또다시 와인을 맛 볼 기회를 노리던 나는,
우연찮게도 이탈리아 와인을 손에 넣게 되었다.

Mona Lisa Sangiovese di Toscana, IGT, 2004




Toscana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 산지라고 한다.
당연히도 유명한 이탈리아 와인들의 대다수가 이 지역에서 생산된다.
Toscana의 주도(州都)는 다름 아닌 르네상스의 고장, 피렌체다.
신에게 묶여 있던 인간이 해방되어 나오던 바로 그 도시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세 명의 위인을 꼽아 보면, 모두 이 토스카나 피렌체에 있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그 셋 중에서도 인구에 가장 먼저 올려지는 이름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다.
그리고 다 빈치 하면 떠오르는 작품은 바로 이 와인의 이름인, 너무도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모나리자] 이다.

이 와인은 토스카나 지방의 와인이라는 것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이 있는지
제조사 이름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고 주력 와인 이름도 이 [모나리자] 이다.
물론 라벨에도 떡하니 모나리자 그림을 붙여 놓아서 사람들에게 굉장히 강한 어필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와인 자체는 모나리자나 다 빈치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말하기 굉장히 어렵다.

Toscana 지방의 주력 포도품종은 산지오베제(Sangiovese)다.
Toscana 와인의 대표는 끼안띠 (Chianti)라고 한다. - 나는 아직 맛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끼안띠 역시 이 산지오베제로 만들어진다. 끼안띠는 Toscana의 대표일 뿐 아니라 이탈리아 와인의
대표이므로 이탈리아 와인의 대표적 경향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여러 사람들이 이탈리아 와인의 특징으로 꼽아 놓은 것을 보면,
대중적이다,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간다, 무난하다... 등등으로 요약되는데
아마도 이것이 끼안띠의 성격, 또 그 주력 원료인 산지오베제의 성격이기도 할 것이다.

이 [모나리자]는 100% 산지오베제로 만들어지므로, 아마 포도품종의 성격을 많이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색깔은 체리 빛깔이 살짝 돌 정도로 화려하고 투명한 편이다.
향은 일차원적이라고나 할까, 가벼워서 멀리 날아갈 것 같아서 코를 쉽게 자극한다.
첫 모금을 물었을 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색깔에서 느꼈던 빨간 색 체리.
입에 머금은 음료의 질감은 그렇게 끈끈하거나 무겁지 않고 찰랑찰랑 가벼운 편이다.
이 녀석은 남성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첫 대면에 치고 들어오지만,
그만큼 쉽게 멀어져버리는 느낌이다.

마치 단순하고 쾌활한 이탈리아의 젊은이를 마주한 듯 하다.

여기까지는 이 와인에 대해 별 불만이 없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는 제조사 이름과, '모나리자'라는 와인의 이름, 그리고 라벨의 그림은 불만요소이다.
위에서 느꼈던 그 모든 와인에 대한 느낌은,
내가 가지고 있던 다 빈치와 모나리자에 대한 느낌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있다면, 신의 압제에서 벗어난 르네상스의 자유분방함 정도?
불행히도 모나리자는 너무 많은 비밀과 추측으로 신비함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지 오래다.


얘네들은 이런 마케팅을 펼치면서 스스로 무릎을 치면서 자찬했을까?
이렇게 포장과 내용물의 성격이 딴판이면,
그닥 큰 재미는 못 보았을 것 같은데...

Chateau Mont-Perat 2004 포도음료

한겨레신문 최종 전형을 마치고,
왠지 멍한 기분으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11월의 첫번째 장으로 접어들면서 공기는 점차 차가워지고
이제 가을이 가는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11월 10일,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 바로 전날.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출근을 하였고
나는 여전히 멍한 기분으로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오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합격 통보였다.

아, 이제 끝났구나.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고자 했던 준비단계의 마지막이 찾아오고 말았다.
기쁨과 떨림, 그리고 새로운 불안감이 멍해 있던 나를 두드렸다.
뛸 듯이 기뻐하는 아내의 얼굴을 보며 난 오히려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바로 그 날 아내와 함께 한 모처럼의 외식 자리에서 나는 와인이라는 음료를 새롭게 알았다.

집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격과 관계없이 친숙했던 레스토랑 일 마노 (Il Mano)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아내와의 자축파티에서 이 녀석이 슬쩍 등장한 것이다.

Chateau Mont-Perat 2004



아마 그 날의 기쁨과 불안이 뒤섞인, 낯선 기분 탓이었겠지만
내 안에 들어온 이 녀석은 그 전에 내가 몇 번 마셔봤던 와인들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촛불을 반사할 정도의 검붉고 그윽한 색깔.
무엇보다도 너무나도 부드럽게 입을 잠식해들어가는 친숙함.
새콤하게 혀끝을 자극하는 포도의 농후함.
그리고 착 가라앉아 있지만 조용조용 들뜨게 만드는, 커피와 같은 향기가 있었다.

처음엔 우리 부부의 자축연을 달뜨게 만들어 준 이 녀석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중엔 이 녀석의 정체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날 흔들었다.


나중에 나름대로 찾아본 결과,
그 부드러움의 정체는 70%의 메를로였고 그 향기의 정체는 30%의 까베르네 소비뇽 이었다.
또 그 검붉은 색깔과 농후함의 정체는, 포도나무 한 그루에서 여섯 송이만을 수확하는 재배 방법이었다.
이렇게 색과 맛과 향, 세 가지 요소에 각각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 나에겐 충격이었다.


이게 내가 와인이라는 음료에 대해 가지게 된 호기심의 발단이다.
내 인생의 두번째 출발점에서 이걸 알게 되었다는 건 아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Burt Bacharach 보고 듣고 느끼고

"내일을 향해 쏴라"
원제는 Butch Cassidy & the Sundance Kid

너무 어렸을 때 봐서 내용도 다 까먹고 별로 기억나는 것도 없지만
이 영화속에서 두 가지는, 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이 장면이다. 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경찰(?, 국경수비대였던가?)에 쫓기던 버치와 선댄스가
날아오던 총탄을 피해 숨어 있다가 밖으로 뛰쳐나오는 이 장면.
서로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고선 뛰어나오던 이 장면에서 영화는 끝난다.
음악이 나왔던가? 기억은 안 나지만 화면은 이 장면으로 멈춰 있었다.
어린 나이에 그건 아마 큰 충격이었나보다. 아직까지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두 번째는 이거다.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wma



아마 에타... 였을 거다. 극중 이름은.
캐서린 로스라는 이 배우는 정말 미국 영화에서 얼굴을 많이 볼 수 있지만,
주연이었던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폴 뉴먼과 함께 자전거를 타는 이 장면에서 나온 BJ Thomas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영화와 노래는 서로를 드높이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었다.
경쾌하지만 왠지 차분하게 가라앉는 노래의 느낌이 어린 나에게도 전달이 되었었나부다.

Burt Bacharach 이란 이름은 한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건방지기로 유명한 Oasis의 Noel Gallagher 가 (그는 심지어 비틀즈와 자신을 동급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이 Burt Bacharach을 두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 "If I could write a song half as good as 'This Guy's in Love With You', I'd die a happy man"

This Guy's in Love With You :
이 노래가 바로 Burt Bacharach의 곡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가 또 Burt의 곡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에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Close to you 등 우리가 CF나 영화 같은 데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음직한
노래들의 작곡가가 바로 이 Burt였다.

다시 한 번 경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John Lennon, Paul McCartney, Brian Wilson, 그리고 Burt Bacharach...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좋은 음악들을 많이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건 분명 노력의 영역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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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은 노래는 BJ Thomas의 원곡이 아닌, 라이너스의 담요 연진 양 Version 임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And just like the guy whose feet are too big for his bed
Nothin' seems to fit
Those raindrops are fallin' on my head, they keep fallin'

So I just did me some talkin' to the sun
And I said I didn't like the way he got things done
Sleepin' on the job
Those raindrops are fallin' on my head, they keep fallin'

But there's one thing I know
The blues they send to meet me won't defeat me
It won't be long till happiness steps up to greet me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But that does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 red
Cryin's not for me
'Cause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
Because I'm free
Nothin's worryin' me

It won't be long till happiness steps up to greet me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But that doesn't mean my eyes will soon be turnin' red
Cryin's not for me
'Cause I'm never gonna stop the rain by complainin'
Because I'm free
Nothin's worryin'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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